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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한국사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반달 친구 2023.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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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목 차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 부여와 고구려
  • 옥저와 동예
  • 삼한(마한, 진한, 변한)

철기 시대로 들어서면서 주변 부족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전쟁이 많아지게 됩니다. 만주와 한반도에도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여러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위쪽에 부여와 고구려, 동쪽 해안에 옥저와 동예, 한반도 남쪽 지역에는 마한, 진한, 변한이 위치하게 됩니다.

 

부여와 고구려

 

부여와 고구려는 여러 부족이 연합한 연맹 왕국으로 왕을 중앙에 두고 지역의 수장들이 각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그 영역에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입니다. 왕도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크게 4개로 나누어 지배했습니다. 각 지역은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 불리는 관리에 의해 다스려졌고 그들은 왕과 함께 크고 작은 나라 일을 결정하였으며 왕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여 사람들에게 농업과 목축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관리의 이름에 동물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마가-말, 우가-소, 저가-돼지, 구가-개)

부여에는 남의 물건을 훔치면 물건값의 12배를 물어 주어야 하는 1책 12법과 사람을 죽인자는 죽이고 그 가족은 노예로 삼는 법이 있었습니다. 매년 12월에는 영고라는 대축제가 열렸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농사와 목축이 잘되기를 빌었습니다. 이는 사회 통합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여에는 왕, 귀족 등이 죽으면 쓰던 물건과 모시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순장 풍습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부터 5세기까지 오랫동안 번성했던 부여는 4세기 이후 세력이 약해지면서 결국 고구려에 의해 멸망합니다.

 

고구려는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와 졸본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 역시 5부족 연맹 국가로 대가라 불리는 부족의 대표들이 다스렸습니다. 고구려에는 국사를 논의하던 최고의 귀족회의체인 제가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회의에서는 왕위계승, 대외전쟁, 외교문제 등 나라의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결정했습니다. 

고구려의 사회 풍속으로 서옥제와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습니다.

서옥제는 결혼 풍습으로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서옥이라는 집을 짓고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운 뒤에 신랑 집으로 돌아가서 사는 제도이며, 동맹은 10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로 농경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추수감사제와 같습니다.

 

옥저와 동예

 

옥저는 함경남도 해안에서 두만강 유역일대로 동옥저와 북옥저로 이루어졌습니다. 옥저와 동예는 왕 없이 읍군 또는 삼로라 불리는 군장에 의해 각 지역이 커나갔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덕에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농업을 주로 하며 곡식을 생산하였습니다. 옥저는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 속에 큰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습니다. 고구려는 옥저를 복속시키고 고구려의 영역으로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옥저는 매년 소금과 해산물을 고구려에 바쳐야 했습니다.

옥저에는 민며느리제와 가족 공동무덤이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민며느리제는 장차 며느리로 정한 여자아이를 열 살이 되기 전 혼인을 약속하고 데려와 키운 다음,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면 신랑 집에서 여자 집에 예물을 보내 대가를 주고 며느리로 삼는 풍속입니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집에서 혼수 비용 대신 행한 일이라고 합니다. 한편 옥저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시신을 산에 묻어두었다가 뼈만 추려 보관하여 함께 묻는 장례 풍습으로 가족 공동무덤이 있었습니다. 

 

동예는 현재의 강원도와 함경도 남부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읍락은 산과 내를 경계로 나누었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면 소, 말, 노예 등으로 보상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같은 씨족끼리 결혼하지 않는 족외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였으며 별자리을 보며 그해의 풍흉을 점쳤습니다. 해마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았다는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2~3세기의 동예는 공동체적 유대관계가 강한 사회였다고 합니다.

동예의 특산물로는 박달나무로 만든 활인 단궁, 바다표범의 가죽인 반어피가 있습니다.

4세기 초 동예의 북부는 고구려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그 후 고구려 및 신라에 의해 병합되었습니다.

 

 

삼한(마한, 진한, 변한)

 

삼한은 한반도 남부에 등장한 나라로 마한, 진한, 변한을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6세기 중반 신라에 의해 개별적으로 정복당하면서 소멸되었고, 훗날 마한은 백제로, 진한은 신라로, 변한은 가야로 발전되었습니다.

삼한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각 지역에서 성장해 나갔으며 마한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습니다. 신지 또는 읍차라 불리는 군장이 다스렸으며, 마한의 목지국 군장이 삼한을 대표했습니다.

군장은 읍락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고, 천군이라는 제사장은 따로 '소도'라는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각 소국에는 소도라는 별읍이 있었습니다. 삼한은 정치와 제사가 분리된 사회로 죄인이 소도로 도피하더라도 제사장의 허락 없이 잡아갈 수 없었습니다.

삼한은 토지가 비옥하여 벼농사를 많이 지을 수 있었고, 씨뿌리기가 끝난 5월, 추수가 끝난 10월에 풍년을 기원하고 추수에 감사하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철생산과 거래가 활발했던 삼한은 철제 농기구나 무기의 대량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그중 변한은 철이 풍부하여 낙랑과 왜에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 솟대 - 소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깃대 위의 새가 땅과 하늘을 이어준다고 믿었으며 솟대를 마을 입구에 세워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한편 마을을 지키고 풍년을 기원함.

솟대
강원 정성군 임계면 솟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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