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31

조선 후기 대외 관계 그리고 규장각, 수원 화성 조선 후기 대외 관계의 변화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뒤, 청을 배척하자는 북벌론이 일어났습니다. 효종은 군대를 강화하고 무기를 개발하며, 성을 쌓는 등 청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농민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고, 더욱 강해진 청을 상대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조선은 청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연행사를 파견하였습니다. 청의 도읍인 연경(베이징)에 가는 사신이란 의미로 '연행사'라 불렀습니다. 연행사의 사신들은 여러 나라의 새로운 학문과 선진 문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였습니다. 이후 1607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국교를 맺자고 수차례 요구하자, 임진왜란 때 잡혀간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조건으.. 2024. 7. 8.
조선후기 정치의 변화: 비변사, 대동법, 영정법, 균역법, 탕평책 조선은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으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것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하여 병자호란 이전을 조선 전기, 이후를 조선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인조는 병자호란이 끝나고 정치적 안정과 백성을 위해 여러 개혁을 시도하며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였습니다. 국방력을 강화하고 조선을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던 인조는 1649년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봉림대군으로 불렸던 효종은 병자호란 후 대군이었을 당시 청나라에 인질로 보내지기도 하였습니다. 효종 역시 국방력 강화를 최우선으로 군사 제도를 개혁하였고 군사 훈련을 강화하였습니다.   비변사  조선 전기에는 의정부와 6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를 중심으로 .. 2024. 7. 4.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목 차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인조반정, 1623년 정묘호란, 1627년 병자호란, 1636년 삼전도의 굴욕 인조반정, 1623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는 광해군 대신 영창 대군을 세자로 바꾸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선조의 죽음으로 광해군이 15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광해군은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토지와 인구를 조사하여 국가 재정을 늘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조의 명으로 편찬하기 시작한 이 1610년 완성됩니다. 은 허준이 쓴 책으로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적어 놓은 의학 백과사전입니다. 또한 이 책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명은 임진왜란 참전 후 점점 힘이 약해졌습니다. 만주에.. 2023. 10. 18.
진주 대첩과 행주 대첩, 정유재란, 명량 해전과 노량 해전 목 차 진주 대첩과 행주 대첩, 정유재란, 명량 해전과 노량 해전 진주 대첩 (1592년 10월) 행주 대첩 (1593년 2월) 2차 진주성 전투 (1593년 6월) 정유재란 (1597년) 명량 해전 (1597년 9월) 노량 해전 (1598년 11월) 임진왜란 이후 진주 대첩 (1592년 10월) 조선수군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히자 일본군은 곡창 지대인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진주성을 공격합니다. 한 달 전 진해와 고성, 창원에서 일본군을 무찌르고 빼앗긴 성을 탈환한 진주 목사 김시민은 미리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화약과 총통을 준비하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군은 수천 개의 대나무 다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일본군에 맞서 화약과 끓는 물, 큰 돌을 던지며 필사적으로 대항하였습니다. 조선군 3800명은.. 2023. 10. 4.
임진왜란, 거북선 한산도 대첩 의병 곽재우 목 차 임진왜란, 거북선 한산도 대첩, 의병 곽재우 임진왜란의 발발 이순신과 거북선 그리고 한산도 대첩 의병의 활약 임진왜란의 발발 조선은 1392년 건국 이래 200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14대 왕 선조는 국토방위에 소홀했고 조선의 군사 조직과 전투력은 약해져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은 오랜 전쟁을 통해 100년간 이어온 전국 시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하고, 지방 세력가들의 힘을 모아 한반도와 중국을 정복하려는 야망으로 대륙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명나라는 농민들의 반란과 정치적 혼란으로 황제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을 정벌하기 위해 가는 길을 조선에게 내어 달라 요구하였습니다. 이를 거절하자, .. 2023. 10. 2.
계유정난과 사육신, 4대 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목 차 계유정난과 사육신, 4대 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계유정난과 사육신 사림의 등장과 4대 사화 계유정난과 사육신 4대 세종에 이어 1450년 세종의 맏아들 문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성품이 뛰어나고 공부를 좋아했던 문종은 30년 동안 세자로서 세종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한 문종은 얼마 되지 않아 어린 단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문종은 죽기 전 김종서와 황보인 등에게 단종을 잘 지켜달라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에게서 왕위를 빼앗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김종서, 황보인을 역모 혐의를 씌워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대군도 역모 세력과 엮어 귀양을 보내고 결국 사약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유정난이라고 부릅니다... 2023. 9. 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