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통일 신라 시대 사회와 불교, 불국사와 석굴암
- 통일 신라 시대의 사회
- 불교의 대중화
- 불국사와 석굴암
- 바다의 왕자, 장보고
통일 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하나로 모아 새로운 민족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676년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받아들이며 삼국을 통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으로 아들 신문왕은 동해 바다 대왕암에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왕암이 바라보이는 곳에 감은사를 세웠습니다.
통일 신라 말에는 왕권이 약해지고, 귀족들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원종·애노의 난 등 각지에서 농민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나라가 혼란해지자 지방에서는 새로운 세력인 호족이 등장하게 되었고 900년 후백제, 901년 후고구려가 세워지면서 다시 삼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통일 신라 시대의 사회
통일 신라는 왕권을 강화하고 여러 제도를 재정비하였으며, 바다를 통해 당과 일본, 멀리 서역과도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경주 원성왕릉을 지키고 있는 무인상은 곱슬머리에 부리부리한 눈, 오뚝한 콧날을 지닌 서역 사람의 모습으로 서역과의 교류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신라는 당에 금, 은, 인삼, 말, 모피류 등을 수출하였고, 비단, 약재품, 서적 등을 수입하였습니다.
신문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학을 설치해 유학을 가르쳤으며,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요 지역에 5소경을 설치해 국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자 하였습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시대 왕과 귀족들이 모여 잔치를 열고 연회를 즐기던 곳으로 이곳에서 발굴된 3만여점의 유물은 그들의 화려한 생활 모습을 보여줍니다. 통일 신라 시대 귀족들은 많은 노비와 사병을 거느리며 풍족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고, 평민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세금을 내고, 나라 일에 동원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세금을 거두기 위해 민정문서를 제작해 마을의 인구, 논밭의 넓이, 가축의 수를 기록하였습니다.
불교의 대중화
통일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화로 발전시켰습니다.
승려 혜초는 지금의 인도인 천축국과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10년 동안 둘러보고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에는 각 나라의 풍속, 지리, 역사, 문화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효는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의상은 당나라로 건너가 화엄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원효와 의상은 불교가 발전한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동굴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잠결에 목이 너무 말랐던 원효는 옆에 있던 물을 달게 마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물이 해골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구역질이 났습니다. 원효는 "그렇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내 마음뿐이다. 진리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원효는 '나무아미타불'만 외우면 누구나 극락에 갈 수 있다고 설교하며 백성들에게 널리 불교를 퍼뜨렸습니다. 원효와 의상 등의 노력으로 불교가 평민에게도 널리 보급되면서 불교는 대중화되었고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성덕 대왕 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만든 종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입니다.
대표적인 불교 문화재로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이 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와 석굴암은 아름다움과 우수한 건축 기술을 보여주고 있기에 199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불국사는 경주 토함산에 위치한 절로 '불국'은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불국사에는 서쪽에 단아한 삼층 석탑(석가탑)과 동쪽에 섬세하고 화려한 다보탑 그리고 청운교와 백운교 등이 있습니다. 불국사 삼층 석탑 내부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으로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석굴암은 화강암을 다듬어 쌓아 올려 만든 인공 석굴 사원입니다. 석굴암의 본존 불상은 부처의 위엄과 경건함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본존불 주위에는 나한상, 보살상, 사천왕상 등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아치형의 석굴암 천장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 높은 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석굴암은 높은 기온과 습기로 동굴 내부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차가운 물이 흐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석굴 안의 습기가 바닥으로 모여 땅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내부 공기는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다의 왕자, 장보고
장보고는 신라 평민출신으로 어려서 당으로 건너가 무관이 되었습니다. 해적에게 잡혀와 노비가 된 많은 신라인들을 보고 장보고는 신라로 돌아와 왕에게 건의하여 청해에 군대를 설치했습니다. 828년 전라남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 상인들이 안전하게 교역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당과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권을 장악하며 '바다의 왕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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