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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한국사

발해, 바다 동쪽에 있는 번성한 나라

반달 친구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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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5경
발해

목 차

발해, 바다 동쪽에 있는 번성한 나라

  • 대조영, 발해 건국 698년
  •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 발해의 사회와 문화

 

대조영, 발해 건국 69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은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로 이곳저곳 나누어 이주시켰습니다. 영주 땅에 끌려온 고구려 유민, 대조영은 당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탈출하여 만주 지린성 동모산 지역에 터전을 잡고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30년 만입니다. 대조영이 이끄는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 말하며, 강력한 힘으로 고구려의 옛 영토를 대부분 되찾게 됩니다.

무왕은 당의 산둥반도를 공격하는 등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영토를 넓혔고, 8세기 후반 문왕은 주변국들과 친선관계를 맺으며 선진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대외 교통로가 있어 신라, 당, 거란, 왜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교역하기에 유리했습니다. 발해 선왕 때는 연해주와 요동 지방까지 영역을 넓히며 옛 고구려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9세기 전성기를 맞이한 발해는 '바다 동쪽에 있는 번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발해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5경을 설치하여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926년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발해와 고구려는 생김새가 닮은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와의 연꽃무늬, 지붕 양쪽 끝에 얹어 장식하는 치미, 불상, 온돌 등이 매우 흡사합니다. 

당의 역사서인 <구당서>에는 발해 대조영을 고구려 출신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일본은 발해에 보낸 사신을 '견고려사'로 고구려에 보내는 사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발해 무왕은 외교 문서에 "발해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옛 풍속을 간직하였다."라고 기록하였고, 발해 문왕은 자신을 고구려 왕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고구려와 비슷한 문화유산과 역사 기록을 통해 발해가 고구려의 후손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발해가 우리나라의 역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발해의 사회와 문화

 

북쪽지방에 위치한 발해 사람들은 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온돌을 설치해 생활하였습니다.

수도 상경은 넓은 평야와 풍부한 물로 농사를 짓기에 좋은 곳이며, 이웃 나라로 통하는 다섯 갈래 길이 있어 상인과 사신들이 활발히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발해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었습니다. 불상, 석등, 연꽃무늬 등 불교문화가 발달하였고, 수도 상경과 주변 지역에서는 많은 불교 유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발해 문화재로는 발해 석등, 팔보 유리정 등이 있으며, 석등의 높이는 무려 6미터가 넘습니다. 팔보 유리정은 발해의 우물로 고구려의 우물 양식을 이어받은 팔각형의 돌우물입니다. 발해 문왕의 넷째 딸인 정효 공주의 무덤 벽면에는 12인의 무사와 시종, 악사들이 그려져 있으며, 이를 통해 발해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발해 석등
발해 석등


 

발해 왕 계보(698 ~ 926)

 

1대 고왕(대조영) → 2대 무왕 → 3대 문왕 → 4대 대원의 → 5대 성왕 → 6대 강왕 → 7대 정왕 → 8대 희왕 → 9대 간왕 → 10대 선왕 → 11대 대이진 → 12대 대건황 → 13대 대현석 → 14대 대위해 → 15대 대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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