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등한국사

후백제, 후고구려의 건국과 고려의 삼국 통일

반달 친구 2023. 8. 18.
반응형

후삼국시대
후삼국시대

목 차

후백제, 후고구려의 건국과 고려의 삼국 통일

  • 통일 신라 말의 상황
  • 후백제와 후고구려
  • 고려의 삼국 통일 과정

 

통일 신라 말의 상황

 

통일 신라 말, 진골 귀족들은 서로 왕이 되겠다고 다툼을 벌이면서 왕권은 약해졌고 나라는 점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농민들의 땅을 빼앗는 등 백성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져 갔습니다. 흉년과 전염병으로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유랑민이 되거나 도적떼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 왕이 멀리 지방까지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자, 지방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인 호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힘을 키워 군대를 만들고 마을을 지키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중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호족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견훤은 옛 백제 땅에 후백제를, 궁예는 옛 고구려 땅에 후고구려를 건국합니다. 다시 세 나라로 나뉘게 되고 이 시대를 후삼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후백제와 후고구려

 

후백제 건국, 900년

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난 견훤은 어려서부터 힘이 아주 강했습니다. 15살에 신라 군대에 들어가 나라를 열심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많은 양의 세금으로 굶주리게 되고 점점 불만이 쌓여만 갔습니다. 견훤은 그러한 농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힘을 키워나갔습니다. 견훤은 900년 완산주를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서쪽 지역을 점유하며 옛 백제의 영토를 차지한 견훤은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고 지었습니다.  

 

후고구려 건국, 901년

신라 왕족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는 궁예는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유모가 궁예를 몰래 궁밖으로 내보내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사고로 궁예는 한쪽 눈을 잃게 됩니다.

궁예는 승려가 되고자 절에 들어가지만 곧 절을 나와 도적떼가 되어 힘을 키웠습니다. 점점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던 궁예에게 송악의 대표 호족인 왕륭과 그의 아들 왕건이 힘을 보태자 궁예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901년 송악을 도읍으로 후고구려를 세우게 되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태봉'으로 바꾸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궁예의 난폭함으로 백성들과 호족들의 원망은 커져만 갔습니다. 궁예는 자신을 살아있는 미륵이라 말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주변인들을 의심하고 죽이는 등 포악한 정치를 일삼았습니다. 결국 신하들은 민심을 잃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에게 왕이 되어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918년 왕건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습니다. 왕건은 나라이름을 고려로 정하고 다시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고려의 삼국 통일 과정

 

후백제 견훤은 계속해서 신라를 공격했습니다. 고려가 신라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내자 후백제와 고려의 관계는 나빠지게 됩니다.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은 부하 김락과 신숭겸을 잃으며 크게 패배합니다. 신라를 돕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온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지금의 대구 근처인 공산에서 만나 벌인 전투로 왕건은 후백제군에 포위되었다가 겨우 도망쳐 나오게 됩니다.

930년 고창(지금의 안동)에서 또 한 번의 싸움이 벌어지고 고려는 후백제를 맞아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이때 많은 호족들은 고려에 항복하였고 고려의 힘은 강력해져 갔습니다.  

후백제 견훤이 넷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첫째 아들 신검은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견훤은 금산사에 석 달간 갇혀있다 탈출하여 왕건에게 갔고, 왕건은 견훤을 기꺼이 받아주었습니다.

후백제의 공격으로 힘이 약해진 신라 경순왕은 견훤이 왕건에게 항복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935년 경순왕은 나라를 고려에게 넘기며 스스로 항복합니다. 하지만 신라의 태자는 아버지 경순왕의 뜻에 끝까지 반대하여 고려로 가지 않았습니다.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평생 삼베옷을 입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마의 태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936년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와 일리천에서 큰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전투에서 고려는 승리하며 후백제멸망시킵니다.

그리하여 고려는 후백제와 신라를 차지하게 되고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또한 고려는 926년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한 발해 유민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민족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공산 전투(927년) → 고창 전투(930년) → 신라의 항복(935년) → 후백제의 멸망(936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