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계유정난과 사육신, 4대 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 계유정난과 사육신
- 사림의 등장과 4대 사화
계유정난과 사육신
4대 세종에 이어 1450년 세종의 맏아들 문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성품이 뛰어나고 공부를 좋아했던 문종은 30년 동안 세자로서 세종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한 문종은 얼마 되지 않아 어린 단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문종은 죽기 전 김종서와 황보인 등에게 단종을 잘 지켜달라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에게서 왕위를 빼앗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김종서, 황보인을 역모 혐의를 씌워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대군도 역모 세력과 엮어 귀양을 보내고 결국 사약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유정난이라고 부릅니다.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자 단종은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내주게 됩니다.
그리하여 1455년 수양대군이 조선의 7대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단종의 자리를 빼앗은 세조에게 분노한 신하들은 단종 복위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사육신이라 불리는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끝까지 비판하다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457년 단종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결국 그곳에서 그해 10월 죽고 맙니다. 이후 사육신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정조 때 사육신은 비로소 충신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사림의 등장과 4대 사화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파 신진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유교 정치를 펼치며 많은 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계유정난이 일어나고 훈구 세력은 막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훈구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세력인 사림이 등장했습니다.
사림은 조선이 세워질 때 일편단심 고려에 대한 충심을 가졌던 정몽주가 죽자, 한양을 떠나 지방에 내려간 온건파 신진 사대부의 제자들입니다. 1469년 9대 왕 성종은 많은 고위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사림을 등용하였습니다. 김종직은 사림 세력의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은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맡으며 훈구 세력의 부정과 비리를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훈구 세력과 사림은 점점 더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은 조선 시대 언론 기능을 담당한 곳입니다. 그리고 사림을 적극 등용했던 성종에 이어 연산군이 왕이 되면서, 사림의 언론 활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연산군과 훈구 세력은 사림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게 됩니다.
첫 번째 사화는 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입니다. 사화는 '사림 세력이 화를 입었다'는 뜻으로 훈구 세력의 사림에 대한 탄압을 의미합니다. 연산군 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는 성종의 사초에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초란, 사관들이 그때그때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글을 말합니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지은 글로 항우에게 살해된 중국 왕 의제를 추모하는 내용입니다. 훈구 세력은 이를 세조의 계유정난을 비판한 것이라며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 등을 포함해 많은 사림들을 죽였습니다.
1504년 연산군 10년에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생모와 관련해 일어난 사화입니다. 연산군이 어렸을 적, 성종은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의 질투가 심하고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하여 윤씨를 폐위시키고 사약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를 모르고 있었던 연산군이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 윤씨의 폐위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찾아 죽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림 뿐 아니라 훈구 세력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연산군은 왕권을 견제하는 기관들을 없애고, 유교사상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으며 방탕한 생활과 폭정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훈구 세력은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을 일으켰습니다. 폭군 연산군은 결국 폐위되었고, 1506년 진성대군은 11대 중종이 되었습니다.
중종은 왕이 되고 훈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을 등용하였습니다. 이때 등용된 조광조는 유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고자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종반정으로 공신이 된 사람 중에서 거짓으로 공신 작위를 받은 자들을 가려내 자격을 박탈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훈구 세력은 '주초위왕'이라 적힌 나뭇잎을 왕에게 보이며 조광조가 역모를 일으켰다 주장하였습니다. '주초위왕'은 조씨 성을 가진 자가 왕이 된다는 뜻으로 여기서 조씨는 조광조를 말합니다. 1519년 이로 인해 조광조 등 많은 사림이 죽임을 당하는 기묘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중종에 이어 12대 인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에 인종의 이복동생인 12세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어린 명종을 대신해 생모인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자신의 동생인 윤원로와 윤원형에게 권력을 몰아줍니다. 그리고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을 제거하기 위해 을사사화를 일으켰습니다. 1545년 을사사화는 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벌어진 사화입니다.
네 차례의 사화를 겪으며 사림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사림은 지방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리고 14대 선조 때부터 정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조선왕조계보(1392~1910)
5대 문종 (1450~1452) → 6대 단종 (1452~1455) → 7대 세조 (1455~1468) → 8대 예종 (1468~1469) → 9대 성종 (1469~1494) → 10대 연산군 (1459~1506) → 11대 중종 (1506~1544) → 12대 인종 (1544~1545) →13대 명종 (1545~1567) → 14대 선조 (1567~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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