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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한국사

조선 전기 대외 관계와 봉수 제도, 분청사기와 백자

반달 친구 202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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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목 차

  조선 전기 대외 관계와 봉수 제도, 분청사기와 백자

  • 조선 전기 대외 관계
  • 봉수 제도
  • 조선 전기의 그림과 공예, 분청사기와 백자

조선 전기 대외 관계

 

1402년 조선초기 태종 때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입니다. 이 지도에는 조선과 중국,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그려져 있으며 35여 개의 아프리카 지명과 100여 개의 유럽 지명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에 지도 중앙에 중국이 가장 넓게 위치해 있으며, 조선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합한 것과 비슷한 크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중국과 조선 중심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은 건국 초기에는 명과 대립하였지만, 태종 이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중국에 사대 정책을 펼쳤습니다. 사대란 약자가 강자인 큰 나라를 섬긴다는 뜻으로, 조선은 명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고, 명으로부터 필요한 문물을 받아들이며 이익도 추구하였습니다. 조선은 중국 나라와 사대관계를 맺으며 대외적으로 안정적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진과는 교린 정책을 썼습니다. 교린은 이웃나라와 평화롭게 잘 지낸다는 뜻으로 조선 초기에는 왜와 원만히 교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바다를 건너 침입하는 왜구들이 늘어나면서 조선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갔습니다. 1419년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세종은 이종무가 이끄는 조선 함대를 대마도로 보내 왜구를 소탕하였습니다. 얼마 후 왜는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무역을 하자며 요청해 왔습니다. 세종은 삼포(염포, 부산포, 제포)를 열어 무역을 허락해 주었지만, 1510년 중종 때, 일본인들이 약속을 어기고 삼포에서 소란을 피우자 조선은 왜와의 무역을 중단하였습니다.  

여진족 역시 조선의 국경을 넘는 일이 많아지자, 1432년 세종은 여진족을 막기 위해 최윤덕을 압록강 유역으로 보내 여진족을 토벌하였습니다. 여진을 압록강 북쪽으로 밀어내고 여연, 우예, 무창, 자성에 4군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종서는 두만강 근처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1449년 두만강 부근에 6진(온성, 종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을 개척하였습니다. 세종은 조선의 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넓혔으며, 현재와 비슷한 국경선이 만들어졌습니다.   

 

봉수 제도

 

조선 시대에는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람이 직접 가서 알리거나, 불이나 연기를 피워 알렸습니다. 봉수 제도란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올려 변방 지역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중앙에 알리는 통신 제도입니다.

나라의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하여 봉수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봉수대는 봉화를 올리는 둑으로 낮에는 토끼 똥을 태워 연기를 피웠고, 밤에는 불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봉수대는 시야가 탁 트인 산꼭대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봉수대에서 지금의 남산인 목멱산의 봉수대로 전달되었습니다. 한양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봉수대가 연결되어 있어 어느 쪽의 국경에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봉수대에서 피워 올리는 봉화의 개수로 상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한 개, 적군이 나타나면 두 개, 적군이 국경에 가까이 접근하면 세 개, 적군이 국경을 침입하면 네 개, 그리고 적군과 교전하면 다섯 개의 봉화를 피워 상황의 위급한 정도를 알렸습니다. 함경도나 평안도의 국경 지역에서 신호를 보내면 12시간 안에 한양에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의 그림과 공예, 분청사기와 백자

 

조선 전기에는 양반을 중심으로한 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선비들은 주로 산수화나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매·난·국·죽은 사군자라 불리며,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나타냈습니다. 또한 조선 전기 대표적인 그림으로 안견몽유도원도강희안고사관수도가 있습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으로 왼쪽에는 산, 강을 그려 현실세계를, 중심에는 무릉도원의 입구를, 그리고 오른쪽에는 복숭아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무릉도원을 표현하였습니다. 고사관수도는 바위에 엎드려 물을 바라보고 있는 한 선비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고려시대 아름다운 빛깔을 뽐낸 고려청자는 고려말 나라가 혼란해지면서, 무늬도 단순해지고 빛깔도 탁해졌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청자에 백토를 발라 다시 구워 낸 분청사기가 등장했습니다. 분청사기는 화려함 대신 소박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순백색의 백자도 많이 만들어져 사용되었습니다. 백자는 검소하고 청렴한 선비들이 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백자 달 항아리는 깨끗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검소하고 청렴한 조선 시대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분청사기와 백자분청사기와 백자
분청사기 철화 어문 항아리                                                                                                   백자 달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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