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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한국사

조선의 건국,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반달 친구 202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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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조선의 건국,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 위화도 회군, 1388년
  • 이성계와 급진파 사대부, 조선 건국 1392년

고려 말, 중국 원나라는 한족이 세운 명나라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북쪽으로는 홍건적, 남쪽으로는 왜구가 고려를 침략하였고, 권문세족들의 횡포는 나날이 심해졌습니다. 왕권은 약해졌고 나라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힘들어져 갔고, 혼란한 사회 속에 권문세족과 신진 사대부의 대립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권문세족은 고려 후기 지배 세력으로 조상 대대로 높은 지위와 권력을 누린 집안을 말하며, 새롭게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신진 사대부는 성리학을 공부하고 실력으로 과거시험을 통과해 관리가 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며 성장한 새로운 무인 세력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힘을 합쳐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면서 백성들의 신뢰를 얻은 이성계는 부패한 고려와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개혁을 추진하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정권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토지 제도 개혁(과전법) 등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점차 세력을 키운 이성계와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급진파 사대부들은 1392년 조선을 건국합니다. 

 

위화도 회군, 1388년

 

새로 중국을 차지한 명나라는 고려에게 철령 이북지역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철령 이북 땅은 원나라에게 빼앗겼다 공민왕 때 되찾은 땅입니다. 명의 무리한 요구에 최영은 요동 정벌을 주장하였고, 이성계는 4가지 현실적인 한계를 이유로 반대하였습니다.

< 이성계의 4 불가론 >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안 될 일이다.
둘째, 농사철이라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무리다.
셋째, 명과 싸우는 사이 왜구가 침범해 올 수 있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녹아내려 무기를 사용하기 어렵고,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에게 요동 정벌을 명령하였습니다.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위화도에 도착한 이성계는 큰비로 인해 압록강을 건너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장마철 무더위로 도망치는 군사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왕과 최영이 공격을 재촉하자, 이성계는 왕명을 거역하고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옵니다. 이를 위화도 회군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성계는 최영을 죽이고 우왕을 쫓아내면서 정권을 차지하였습니다. 

위화도 회군

1391년,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은 부당하게 얻은 권문세족의 땅을 빼앗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신진 사대부들에게도 직급에 따라 토지를 나누어주는 과전법을 추진하였습니다. 과전법의 시행으로 권문세족의 힘은 약해졌고, 신진 사대부들은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성계와 급진파 사대부, 조선 건국 1392년

 

한편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 신진 사대부는 고려 왕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고,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급진파 신진 사대부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정몽주는 병문안을 핑계로 이성계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이성계를 찾아갔습니다. 

이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정몽주는 다음의 시조를 주고받았습니다. 

하여가    -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다

단심가    - 정몽주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이 <하여가>를 읊자, 정몽주가 <단심가>로 답하였습니다.

<하여가>는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지은 글로 새로운 세력과 힘을 합쳐 칡덩굴처럼 얽혀 살아가자는 내용이며, <단심가>는 '죽어서도 고려 임금만을 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정몽주의 고려에 대한 충성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새 왕조를 세우는 것을 반대한 정몽주는 이방원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선죽교는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 숨진 곳으로, 원래는 '선지교'라 불렀는데 정몽주가 죽고 대나무가 자라자 '선죽교'라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온건파 사대부는 정몽주가 죽자 힘을 잃고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이성계와 정도전 등 급진파가 중심이 되어 1392년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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