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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한국사

조선의 수도, 한양 그리고 이방원의 '왕자의 난'

반달 친구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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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조선의 수도, 한양 그리고 이방원의 '왕자의 난'

  • 새로운 조선의 수도, 한양
  • 왕자의 난

이성계와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신진 사대부들은 드디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조선은 유교를 바탕으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조선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종묘와 사직을 세웠습니다. 유교 정신을 담아 도성을 설계하였고, '큰 복을 누리라'는 의미의 경복궁과 유교 덕목을 넣어 사대문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방원은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지만 인정받지 못하자 왕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3대 왕, 태종이 됩니다.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여러 제도를 시행하며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새로운 조선의 수도, 한양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부탁으로 조선의 새로운 수도가 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 아래를 둘러보니 그 지세가 과히 명당이었습니다. 뒤로는 북악산, 앞으로는 남산이 있는 한양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이 흐르고 있어 육로 및 수로를 이용한 교통이 편리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넓은 평야가 있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기에도 더없이 좋았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고 2년 후인 1394년,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지금의 서울지역인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정도전유교 정신을 바탕으로 수도 한양을 설계하였습니다. 도성 둘레에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잇는 성곽을 쌓고 성벽의 동서남북에 사대문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궁궐과 사대문의 이름을 유교에서 강조하는 덕목으로 인·의·예·지를 담아지었습니다. 경복궁은 첫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입니다.

경복궁      임금이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려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라는 의미를 담음
흥인지문  동쪽 문으로 인자함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음
돈의문      서쪽 문으로 의리를 지키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음
숭례문      남쪽 문으로 예의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음
숙정문      북쪽 문으로 지혜로움의 의미를 담고 있으나 정숙하고 조용하기를 바라는 의미로 숙정이라 함

 

이렇게 유교 이념에 따라 경복궁을 짓고 제일 먼저 종묘사직단을 세웠습니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로 유네스코 세계 무형 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종묘는 조선이 효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으며, 사직단은 농사를 중요시했음을 보여 줍니다.

도성 안에는 여러 관청과 상점들이 생기며 한양은 새로운 도읍지가 되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부지런히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왕의 즉위식 등 나라의 큰 행사나 주요 의식을 치르던 곳
경복궁 경회루   외국 사신을 만나고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연회를 여는 곳
창덕궁      조선 태종 때 지은 궁궐로 아름다운 후원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됨
종묘          경복궁의 동쪽에 있으며,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직단      경복궁의 서쪽에 있으며, 토지의 신(사)과 곡식의 신(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
보신각      도성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각을 알리는 큰 종이 있는 누각
육조거리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6개의 관청이 있는 거리

 

한양전도
한양전도  <출처: 스토리 한국사 1, EBS>

 

왕자의 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왕권이 강력한 조선을 세우고 싶었고, 정도전은 왕이 아닌 신하 중심의 정치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자로 이성계의 10살 된 막내아들 이방석을 앉히라 건의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선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한 이방원은 분노했습니다. 이방원은 세자인 어린 동생 방석을 죽이고 자신의 뜻과 생각이 다른 정도전도 제거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1차 왕자의 난이라 부릅니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는 자신의 둘째 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넘기고, 방과는 조선의 2대 왕 정종이 됩니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이미 이방원에게 있었습니다. 2년 뒤 넷째 형 방간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방원은 방간 무리를 내쫓으며 세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이것을 2차 왕자의 난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정종은 이방원에게 왕위를 내어줍니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은 권력을 장학하고 3대 태종으로 즉위하였습니다.

함흥차사
이방원이 정도전과 세자 방석을 죽이자, 이성계는 옥새를 들고 함흥으로 가버렸습니다. 이방원은 이성계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함흥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함흥으로 간 사신들은 죽거나 감금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함흥에만 가면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하여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조선왕조(1392 ~ 1910)

1대 태조 이성계 (1392~1398) → 2대 정종 이방과 (1398~1400) → 3대 태종 이방원 (1400~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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